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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사 칼럼 '고양이 만성 신장 질환, 조기 발견과 치료법은'

남예림 샤인동물메디컬센터 고양이센터장

최근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반려동물을 키우는 반려인은 1262만 명에 달한다. 수치상으로는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이 71%로 훨씬 많았지만 2020년보다 반려견을 키우는 가구의 비율은 감소한 데 반해 반려묘 가구는 25%에서 27%로 증가했다.

고양이는 독립성이 강하고 청결을 잘 유지하는 등의 특징을 지녔다. 매력적인 반려동물로 꼽히나 의외로 질병에 취약하다. 특히 신장계통이 약하기 때문에 만성 신장 질환에 잘 걸린다. 2017년 글로벌 펫 기업 힐스(Hill’s)가 진행한 글로벌 심포지엄에서 미국 수의학 내과 전문의 제인 로버트슨 교수는 고양이 3마리 중 1마리가 만성 신장 질환으로 목숨을 잃는다고 발표했다. 실제로 많은 보고서에서 고양이의 주요 사망 원인 중 1위가 암, 2위가 만성 신장 질환이라고 이야기한다. 

신장의 기능

신장은 사람뿐 아니라 강아지와 고양이에게도 매우 중요한 장기다. 신장은 간과 함께 신체활동으로 만들어지는 노폐물과 독성 물질을 처리한다. 그중에서도 신장은 주로 단백질 대사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암모니아, 요소, 요산 등과 같은 질소산화물을 처리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신장의 다른 별명은 '침묵의 장기'다. 신장은 기능의 25% 내외만 있어도 겉으로 보기에 정상적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신장 기능의 75%가 손상되기 전까지 이상을 알아차리기가 매우 어렵다. 한번 손상된 신장은 기능을 회복하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만성 신장 질환으로 이어지게 된다.

고양이가 신장 질환에 취약한 이유

고양이들 사이에 신장 질환이 많은 이유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몇 가지 추측되는 설이 있다. 지금은 전 세계 어디서든 사랑받는 고양이의 고향은 물이 귀한 사막이다. 10만 년 전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들고양이를 가축화하면서 인간과 함께 살기 시작한 고양이는 이후 모험가들이 장기간 항해할 때 식량을 축내는 쥐를 잡기 위해 배에 함께 태우면서 전 세계로 퍼지게 됐다고 한다.

물이 귀한 곳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고양이는 체내에서 빠져나가는 수분을 최소화해야만 했고, 소변을 농축하는 능력이 다른 동물들에 비해 뛰어나다. 그러다 보니 갈증을 잘 느끼지 않아 체내에 독소가 쌓일 가능성이 커지게 되고 신장에 만성적인 손상이 생길 수 있다. 또한 강아지보다 신장의 기능을 담당하는 네프론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도 만성 신장 질환을 앓는 비율이 높은 하나의 원인으로 추측된다.

만성 신장 질환의 검사·진단 방법

만성 신장 질환의 초기에는 겉으로 드러나는 별다른 증상이 없어 보호자가 이상을 알아차리기 어렵다. 보통 나이가 들면서 신장 질환이 생기기 때문에 입맛이 없고 근육이 줄어들며 움직임이 적어지는 등의 증상이 노화에 의한 것으로 잘못 인지돼 치료 적기를 놓치기도 쉽다.

신장 질환을 진단하는 첫 번째 방법은 혈액 검사다. 혈액 검사를 통해 BUN(blood urea nitrogen)과 크레아티닌, 인, 칼슘 등의 수치를 확인한다. 채혈로 신장이 시간당 처리하는 여과 기능을 간접적으로 추측할 수 있는 간편한 방법이지만 신장의 기능이 25% 이하로 떨어져야 수치가 높아진다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좀 더 조기에 진단하기 위해 SDMA(symmetric dimethylarginine)라고 하는 신장 손상 조기 진단 마커를 이용한다. SDMA는 신장 기능이 최소 25%에서 평균 40%만 손상돼도 증가한다. 또한 일반적인 신장 수치에 비해 신장 외의 요인에 영향을 적게 받기 때문에 신뢰도가 더 높다고 볼 수 있다. 

신장 질환을 진단하는 두번째 방법은 소변 검사다. SDMA가 상승하거나 크레아티닌 수치가 정상 참고치 내에 있더라도 증가 추세라면 반드시 소변 검사를 해 소변의 농축 능력이 충분한지, 단백뇨가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세 번째로는 영상검사를 통해 신장의 외형 변화가 있는지, 내부 구조에 변형이 생겼는지를 살펴보는 방법이다. 이러한 검사를 토대로 신장 질환의 병기를 진단하고 혈압을 체크해 고혈압 위험군인지를 파악한다.

주요 증상

앞서 이야기했듯이 만성 신장 질환 초기에는 특별한 증상이 없다. 그러나 질환이 계속 진행됨에 따라 고양이가 다음과 같은 증상을 보이게 된다. 평소보다 기운이 없고 식사량과 체중이 줄어드는 증상이다. 움직임이 적어지고 수면시간이 늘어나기도 한다. 구강에 염증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입 냄새가 심해지거나 털이 푸석해진다.

또한 이전보다 물을 많이 마시거나 소변을 자주 보는 증상이 생길 수 있다. 이러한 증상 중 어떤 하나라도 나타난다면 신장 기능을 검사하는 것이 좋다. 만성 신장 질환이 중증으로 악화하면 빈혈로 기력 저하가 더 심해지기도 하고 심한 경우 요독 증상이나 경련, 혼수상태에 빠져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만성 신장 질환의 단계

고양이 만성 신장 질환은 혈액검사를 이용한 크레아티닌 수치를 기준으로 1~4단계로 구분한다. 크레아티닌 수치 1.6mg/dL 미만인 경우 신장 기능 33% 이상이 남아 있다고 판단하고 1기로 구분한다. 1기는 신장이 정상적으로 기능을 하는 건강한 고양이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지속적인 혈액검사를 통해 신장 기능의 변화 여부를 추적 관찰하는 게 좋다.

크레아티닌 수치 1.6~2.8 mg/dL인 경우 신장 기능의 25~33%가 남아 있다고 판단하며 2기로 구분한다. 2기부터는 신장 질환이 시작되는 상황으로 고양이에 따라 구토, 식욕 감소, 체중 감소 등의 증상을 보일 수 있다. 혈압이 상승하거나 단백뇨가 생기는지 주기적으로 검사를 받아야 한다. 아직 신장 기능이 남아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한 집중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크레아티닌 수치 2.9~5.0 mg/dL이면 신장 기능의 10~25%가 남아 있다고 보며 3기로 구분한다. 3기부터는 본격적인 만성 신장 질환으로 진단한다. 신장 기능이 많이 떨어져 있어 여러 합병증이 발생한다. 요독증으로 인한 기력 저하와 구역감 혹은 구토, 식욕부진을 겪게 된다. 신장 질환에 의한 만성 빈혈이 본격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크레아티닌 수치 5.0 mg/dL 이상인 경우 신장 기능이 10% 미만으로 남아 있다고 판단하며 4기로 구분한다. 4기에 도달하면 신장이 기능을 거의 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명에 직접적인 위협이 된다. 삶의 질이 얼마나 유지되느냐 따라 안락사를 결정하기도 한다.

치료와 관리 방법

고양이의 신장은 한번 나빠지기 시작하면 되돌릴 수 없다. 하지만 급성 신장 손상의 경우 골든타임 안에 적절한 치료를 받게 되면 신장의 일부 기능을 되살릴 수 있기도 하다. 실제로 고양이에게 치명적인 백합류의 꽃을 잘못 먹거나 진통소염제 등을 과다 투여했을 때, 요관이나 요도가 막혀서 급성으로 신장이 나빠지는 경우, 감염으로 인해 신장 손상이 의심되는 경우에는 수액 치료와 약물·투석·수술 등의 방법을 통해 신장의 기능을 회복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만성 신장 질환의 경우 완치보다는 관리에 초점을 두고 치료 계획을 세운다. 고양이 상태에 따라 요독증을 최소화할 수 있는 식이요법과 대증약물들, 수액, 다른 병발 질환을 잘 관리해 신장의 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노령 묘에서 많은 질환이다 보니 신장과 심장의 기능이 같이 떨어져 있는 사례도 흔하다. 체내의 순환을 담당하는 중요한 두 축에 문제가 생긴 것이기 때문에 체액 밸런스를 잘 맞춰야 하는 까다로운 경우도 많다.

단백질과 인 수치 조절해 관리

신장은 단백질 대사처리를 하는 장기다. 고양이의 건강을 위해서는 단백질의 공급이 필요하지만 단백질의 과다 공급은 신장의 기능을 더욱 악화할 수 있다. 따라서 만성 신장 질환이 있는 고양이는 처방 사료를 통해 관리를 할 필요가 있다. 처방 사료는 인과 나트륨, 단백질 함유량이 적은 중단백질의 신장 질환 전용 사료다. 

인 수치 조절 역시 고양이 만성 신장 질환 관리를 위해 매우 중요한 방법이지만 지금까지는 정확한 기준이 없어서 인의 조절을 어떤 기준과 시점에서 해야 할지 애매한 경우가 있었다. 2023년 IRIS(국제신장학회)에서는 4년 만에 신장 질환 관리 가이드라인을 변경하면서 FGF-23 이라는 인 수치 조절을 위한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FGF-23은 섬유아세포 성장 인자를 말하는데 세포 증식과 생존, 분화 등 광범위한 생물학적 기능을 조절하는 인자다. 신장 기능이 떨어진 고양이의 신체에는 인이 배출되지 못하고 체내에 쌓이게 되는데 신체는 이러한 인을 배출하기 위해 FGF-23 라는 물질을 분비한다. FGF-23은 인을 배출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부갑상샘 기능 항진증과 미네랄 골 질환 등 다른 질병을 유발하게 된다. 즉 FGF-23의 수치를 보면서 인 수치를 조절하게 되면 초기 만성 신장 질환의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새로운 만성 신장 질환 치료의 기준으로 각광받는다.

고양이 집사가 주의해야 할 사항

고양이 신장 질환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고양이의 음수량을 늘리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체중 5kg 기준으로 250mL 이상의 물을 마시게 하는 것을 추천한다. 만약 고양이가 물을 잘 마시지 않는다면 집안 곳곳에 물그릇을 두는 것이 좋다. 흐르는 물을 선호하는 경우도 있어 급수기를 사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 밖에 건식 사료보다 습식 사료를 급여하면 사료와 함께 수분을 섭취하게 돼 탈수를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고양이는 일반적으로 6~7세 이상 되면 신장 질환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신장 질환은 조기에 진단해 그 기능을 잘 지켜가는 것이 중요하므로 6~7세 이상의 고양이는 1년에 2회 이상 병원에 방문해 정기 검진과 함께 신장기능 검사를 받는 것을 꼭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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